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2013년은 가장 유명한 해킹 컨퍼런스, DEFCON의 21번째 컨퍼런스가 열린 해다. 컨퍼런스에서 한 MIT 출신의 연구가들은 3D 프린트를 이용하여 복제하기 어려운 열쇠를 스캔하여 쉽게 복사할 수 있는 코드를 공개했다.[1][2] 미국 열쇠 제조사 중 높은 보안으로 유명한 회사인 schlage에서 만든 열쇠의 디자인은 미국 특허 No.5,808,858로 보호받고 있어서 아무 열쇠상에 찾아간다 한들 열쇠를 복사해주지 않는다.[3] ‘Do not Duplicate(복제하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각인된 열쇠는 schlage의 primus 열쇠다. 만약 열쇠를 진짜 잃어버리게 되면, schlage에서 직접 확인작업을 거쳐야지만 열쇠를 복제할 수 있다고 한다.[4] 이렇게 높은 보안 수준은 마케팅으로 잘 꾸며져 회사를 광고하는데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보통 이런 열쇠를 사용하는 이들은 정부시설이나 의료시설, 감옥 등 철저하게 보호가 필요한 곳에서 사용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이 열쇠 복제는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하지만 3D 프린터가 나오면서 열쇠와 같은 보호 수단은 산산이 깨져버렸다.
MIT 연구가인 데이비드 로렌스(David Lawrence)와 에릭 반 앨버트(Eric Van Albert)는 스캐너와 소프트웨어 도구를 사용하여 3D 프린터의 기능을 통해 열쇠의 정확한 모델을 만들었다.[5] Schlage의 Primus 열쇠는 보안상 고유한 모델에 기인하는데 이 모델에는 열쇠 상단과 측면의 두 개의 궤적이 존재한다.[6] 이는 열쇠를 함부로 복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로, 이런 보안적 특징은 세계적인 자물쇠 전문가인 마크 웨버 토비아스 (Marc Weber Tobias)조차도 이 열쇠를 사용하게 하였다.[7] 하지만 이런 유명세와 달리 열쇠는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가지고 있지 않아도 쉽게 복사할 수 있다. 먼저 두 연구가는 열쇠의 메뉴얼과 특허를 연구하여 Schlage의 Primus 열쇠에 있는 두 개의 고유 코드의 해독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열쇠의 상단에는 6개의 숫자가 들어가고, 사이드에는 5개의 숫자가 있어 일련의 숫자가 프로그래밍 된다. 그리고 이를 모델링 소프트웨어에 넣으면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열쇠의 고유번호가 찍힌 사진이었다.[8] 그냥 고유 번호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사진만 가지고 있으면, 설령 3D 프린터가 없다고 해도 3D 프린팅 대행 업체에 맡겨 단돈 5달러 미만으로 열쇠를 만들 수 있다.[9] 이 때문에 Schlage에서 나름 자랑하던 보안 메커니즘은 손쉽게 뚫렸다.
열쇠 수리공을 부르지 않고 집에서 터치 몇 번으로 열쇠를 효율적이게 복사할 수 있는 KeyMe 앱도 있다.[10] KeyMe 앱은 열쇠 사진을 앞뒷면으로 촬영하여 클라우드 저장해두었다가 사용자가 원할 때 열쇠를 선택하여 다시 복제할 수 있다. 이처럼 열쇠 수리공을 부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열쇠를 복제할 수 있는 것도 3D 프린터의 공이 크다. 3D 프린터를 사용하여 입력 데이터만 정확하다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품을 복사해 낼 수 있다.[11]
이처럼 3D 프린터를 통해 열쇠를 쉽게 복사할 수 있게 되면서 범죄자들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앞서 얘기한 사진만으로 혹은 KeyMe 앱을 사용하여 열쇠를 해킹한다면 수백 수천 개의 열쇠를 한 번에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도둑이 집을 털 때도 열쇠를 따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미리 복사해둔 열쇠로 혹은 그 자리에서 열쇠를 복사해서 문을 열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즉, 3D 프린터를 통해 무분별한 열쇠의 복제가 가능해진 셈이다.
또한, 3D 프린터를 통해 비밀번호로 된 자물쇠의 잠금장치를 풀 수 있는 로봇도 만들어졌다.[12] 여러 언론 매체에서 많이 공개된 새미 캄카르(Samy Kamkar)는 3D 프린팅이 가능한 아두이노 기반의 자물쇠 해킹 로봇 알고리즘을 공개하였다. 이 로봇은 비밀번호를 돌려서 맞추는 자물쇠를 해킹하는 로봇으로 최대 5분 안에 잠금장치를 풀 수 있다고 한다. 3D 프린터가 열쇠 복제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물쇠를 해킹하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쓰인 것이다.[13] 이처럼 3D 프린터를 통해 물리적인 열쇠를 복제하고 물리적으로 해킹한다는 것에 좀 더 가까워진 것이다.
3D프린터는 열쇠만 해킹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14년에는 실제로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지문을 위조한 후 50억 원 대의 토지를 가로챈 사건이 발생했다.[14] 범인들은 3D 프린터에서 재료로 사용되는 실리콘을 통해 지문을 위조하여 부동산을 통째로 가로채고 대출까지 받으려고 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4명의 이 일당은 경찰에게 붙잡혔지만, 그들의 수법은 참으로 신기술을 잘 사용했다. 주민등록번호의 앞번호만으로 주민등록증을 완벽히 위조해내고, 지문의 2D 사진을 통해 3D 프린터로 지문을 실물 크기로 제작했다. 실제로 이렇게 제작된 지문은 지문 인식기를 가뿐히 통과하였고, 이를 통해 부동산 관련 서류를 발급받아 원래 지문 주인의 땅을 빼돌리려 한 것이다. 이 사건은 옆 나라 중국도 아닌 국내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주민센터 직원이 주민등록증 사진이 유난히 흐릿하여 이를 이상하여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15][16]
바다건너 미국에서는 3D 프린터를 통해 총을 만드는 사제 무기 제작이 늘어나서 때아닌 골치를 치르고 있다.[17] 사실 3D 프린터가 보급 얘기가 나오기 전부터 흘러나오던 우려 중 하나가 이러한 사제 무기 제작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이 때문에 3D 프린터의 보급에 대한 우려가 섞인 말들이 많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실상 총을 만들기란 쉽지 않아 크게 얘기가 커진 않았다. 물론 인터넷에 검색하여 총의 원리를 이해하고 총의 도면과 약간의 손재주가 있다면 살상력을 가진 총을 만들 수는 있긴 하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살상력이 있는 총을 만들어 불법 무기 소지로 2년의 징역을 받은 사건도 있기도 했다.[18]
하지만 막상 3D 프린터를 통해 작동하는 총을 만들기란 어렵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총은 순간적인 화염을 내뿜어 총알이 발사하는데 이 열을 감당할 수 있는 플라스틱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어떻게 해서 총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총알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3D 프린터를 통해 총기 제작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기술이 발전하고 3D 프린터 재료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3D 프린터 기술 발전, 그 중심에 있는 미국에서 총기를 소지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질환이 없어야 하고, 미성년자, 범죄 기록이 없어야 하며 신원이 확인되어야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 보통 이렇게 팔리는 총기는 필수적으로 일련번호가 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런 일련번호가 없는 총의 소지를 불법화하여 제재하고 있다. 하지만 연방 차원에서는 이러한 법이 존재하지 않아 총을 만들고 팔거나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사제 총은 생각보다 골치 아픈 문제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총알에 일련번호가 없고 구하려고 한다면 구할 수 있으며, 사제 총 시장도 더욱 커지고 있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그리고 이 중심에 3D 프린터가 존재한다.[19]
그런 의미로 코디 윌슨(Cody Wilson)은 3D 프린터를 통해 세계 최초로 알루미늄으로 된 사제 총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총은 M1911 권총 프레임을 따와 실제로도 권총과 비슷한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막상 그의 총에는 일련번호가 존재하지 않는 사제 총이다. 그가 만든 총은 생각보다 의미가 크다. 이는 일반인들도 그럴듯한 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길을 가는데 어린아이가 막대사탕을 빨면서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서 총을 꺼낼 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비록 사제 총을 사용하여 아직 큰 사건이 일어난 적은 없지만 이러한 사제 총이 늘어난다는 것은 어디에서건 위험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제재는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총을 제작한 코디 윌슨의 걱정 어린 말이다.[20]
3D 프린터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생활하면서 고장 난 제품을 그 자리에서 부품을 교체하여 수리할 수도 있고 원하는 제품을 그 자리에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같은 기술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3D 프린터를 통해 만들 수 있는 것이 늘어나면서 분명 우리가 만들지 말아야 할 것들도 존재한다. 또한, 3D 프린터를 통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거나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예의 주시해야 함은 확실하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만들어진 그늘을 우리는 얼마나 주목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