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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이벤트 당첨도 내 손으로, 케빈 폴슨
2017 0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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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후 라디오에서 광고가 흘러나온다. 102번째 전화에 성공하는 분께 ‘포르쉐’를 드린다는 광고가 며칠 동안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의 역대급 이벤트에 사람들의 관심은 최고에 달했다. 당일이 되고 사람들은 부푼 기대를 품고 라디오국에 전화를 걸었다. 101번의 전화가 오고 시끄럽게 울리던 라디오국에 있던 모든 전화가 갑자기 일시 정지되었다. 정적을 깬 한 전화가 라디오국에 울려 퍼졌고 전화를 건 장본인은 자신의 당첨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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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케빈 폴슨(Kevin Poulsen)의 가장 유명한 일화로 라디오 이벤트 전화 해킹사건이다. 1990년 초반 당시 그는 가장 유명한 라디오 방송 전화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라디오 방송국에 연결된 모든 전화선을 제어하여 2만 달러의 현금과 포르쉐를 얻어갔다.[1] 당시 FBI는 케빈 폴슨을 쫓던 상황이었고 그는 한동안 도망자 신세가 되었어야 했다. 18개월 동안 FBI의 눈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 그는 결국 1991년 4월에 체포되었다.[2] 그는 자신의 컴퓨터 사기를 인정하고 5년 정도 감옥에 수감되었었다.[3] 당시 이러한 형량은 미국에서 컴퓨터 범죄 역사상 가장 긴 형량이었다.[4]

케빈 폴슨은 196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태어나 자랐다.[5] 그는 후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지만 FBI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현재 그는 글을 쓰면서 여러 언론매체 특히, wired에 글을 기고하는 기자지만 그는 원래 다크단테(Dark Dante)라는 닉네임을 가진 해커로써 컴퓨터를 이용하여 범죄를 저질렀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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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상당히 어렸을 적부터 해킹을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한 해킹은 컴퓨터 대신 전자 장치와 다른 기술을 이용한 폰 프리킹이였다. 그 당시 그의 나이 15살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는 16세 생일을 맞아 받은 TRS-80 컴퓨터를 이용하여 해킹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코스모스(Cosmos)는 그가 컴퓨터를 통해 기초적인 해킹 기술을 이용하여 해킹한 최초의 해킹이었다. 그가 17세에 되던 해에 그는 대학에 있는 기계를 해킹했다. 그는 유닉스 쉘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이다. 그는 여러 컴퓨터가 아르파넷(Arpanet)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것을 해킹하여 다른 대학교에 있는 기계나 거기에 연결된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었다.[7] 꼬리가 길었던 탓인지 그는 결국 추적당하였고 그가 해킹했던 흔적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실 이런 사실이 쉽게 밝혀진 이유는 그가 자신이 지나간 흔적을 감추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그가 해킹했다는 사실이 걸렸지만, 그것에 대해 다른 어떤 문책도 받지 않았다.[8]

케빈 폴슨은 계속해서 해킹했다. 그는 국방산업에서 일하게 되면서 국방 시스템을 관리하고 합법적인 일을 했다. 당연히 그가 여기서 하는 일은 비밀이라는 보안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밝혀져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케빈 폴슨의 상사는 상당한 폰 프리커였고 그의 친구들 역시 알코올 중독자로 제정신은 아니었다. 케빈 폴슨은 이러한 무리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전화 해킹에 다시 손을 댔다. 결국, 케빈 폴슨이 다시 붙잡히게 되면서 이번에는 정말로 일이 복잡해졌다. 전화 회사는 이전 장비를 새 장비로 교체하면서 케빈 폴슨은 폐기된 전화 중앙 장비를 자신의 사물함에 넣어놨다. 하지만 그의 사물함에 폐기된 전화 중앙 장비가 발견되면서 그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전화 회사에서는 이 같은 소식을 듣고 FBI를 데려와 한밤중에 건물 내에 있는 컴퓨터 및 스위치에 침입하였다고 얘기를 하였고 케빈 폴슨은 결국 꼼짝없이 체포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직장도 그만두어야 했다.[9]

케빈 폴슨이 체포된 후에도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FBI는 그의 친구들, 동료와 이야기하면서 케빈 폴슨이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FBI의 생각을 알게 된 케빈 폴슨은 서둘러 가짜 신분[10]을 가지고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여 얼마 동안은 지하에서 살았다.[11] 당시, 케빈은 일자리가 없었고 더는 어느 공동체도 속해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전화 회사 스위치에 계속 접근하여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찾았다. 그렇게 생계유지방법을 찾다가 그는 북부와 남부 캘리포니아의 퍼시픽벨에 속한 모든 스위치에 접근할 수 있었다.[12] 그는 결국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컴퓨터를 이용한 사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를 이용하여 그는 라디오 전화 이벤트에서 포르쉐 두 대와 2번의 하와이 휴가를 가져갔다.[13] 그는 차를 가져갔지만 단지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돈이 필요했고 경품을 팔아 돈으로 남겼다. 이렇게 하려고 그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자동차 및 다른 상품을 얻을 방법에 대해서 모든 전화 프리픽스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는 라디오 방송국과 같이 중앙 스위치에 접근할 수 있는 값싼 사무실을 임대했다. 그런 다음 그는 지붕 위에 케이블을 몇 개 달아 스위치를 연결한 후 전화선을 라디오 방송국으로 리다이렉션하여 신호가 자신과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는 방송국 전화의 신호를 범람시켜 80-90정도의 콜을 받고 다시 걸으면서 101번째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14] 101번째의 전화가 오는 순간 케빈 폴슨은 라디오에 스스로 전화를 하였고 이 시점에서 아무도 라디오 방송국 전화로 접근할 수 없었다. 특히나, 케빈 폴슨은 라디오 방송국 레이더에 없었기 때문에 그를 찾지도 못했다.

그 사이 FBI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는 케빈 폴슨을 찾고 있었다. 물론 그 시간에 케빈 폴슨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비싼 자동차, 휴일, 현금 상품 등을 타기 위해 라디오 방송국에 사기를 치고 있었다. FBI는 미해결 신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케빈폴슨에 대해 묘사하면서 그를 찾았다. 당시 프로그램에서는 케빈 폴슨의 어린 시절 사진과 그의 해킹 습관 그리고 그가 전화했을 때 갑작스레 조용해지던 상황 등이 소개되었다.[15] 물론 그때는 방송된 그의 사진보다 더 나이가 들어있었고 머리도 금발로 염색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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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케빈 폴슨은 1991년 다시 잡혔다. FBI는 케빈 폴슨을 간첩 혐의로 기소하고 싶어했다. 케빈 폴슨이 정부의 비밀문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케빈 폴슨에게 간첩혐의를 씌울 수 있는 물건을 찾아내거나 최소한의 꼬투리라도 잡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러한 FBI의 바람은 케빈 폴슨이 그것에 대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면서 간첩 혐의는 없어졌다.[16] 대신에 그는 그가 실제로 한 컴퓨터 범죄 일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이 때문에 케빈 폴슨은 5년 형을 선고받았고 감옥에서 5년을 지낸 후에도 그는 3년간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다. 물론, 그 3년 동안은 당연히 컴퓨터도 할 수 없었다.[17]

결국, 그는 감옥에서 석방된 후 컴퓨터 사용을 잠시 중단했다. 대신에 그는 컴퓨터를 그만두었지만, 해킹에 관한 관심은 계속 있었기 때문에 해킹에 대해 글을 쓰는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의 기자 생활은 1988년 wired에서 시작되었다. 더불어 케빈 폴슨의 법원 감독이 만료되었을 2000년부터는 SecurityFocus라고 하는 웹 스타트 업에 합류하여 보안 및 해킹 뉴스를 신고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2005년에 SecurityFocus를 떠나 2005년 WIRED에 합류했다.[18]

물론 그가 완전하게 컴퓨터를 그만두고 글만 쓴 것은 아니다. 2006년에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등록된 성범죄자들 대상으로 MySpace에서 샅샅이 찾아 수백 가지를 식별하는 소프트웨어를 구현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적극 소아성애자를 찾는데 사용되어 그들을 체포하고 MySpace에서 중요한 정책 변화를 이끌었다.[19] 또한, 2007년에는 케빈 폴슨의 보고서를 보면 FBI는 CIPAV라는 맞춤 스파이웨어를 사용하여 범죄 용의자의 컴퓨터를 감염시켰다. 2010년 6월에 케빈 폴슨과 공동 작성자는 이라크에서 기밀문서를 유출하는 웹사이트인 WikiLeaks에 기소된 수십만 건의 기밀 문서유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20]

그는 해커로써의 경험을 살려 글을 써내려 갔고 그렇게 하나둘 쌓이면서 결국 그는 저널리즘 혁신 부문으로 2008년 나이트 배틴 상(Knight-Batten Award)과 2010년 블로그 (Best MIN) 상을 수상했다. 또한, 케빈 폴슨은 아론 스와로츠와 협력하여 언론인과 출처 간의 안전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오픈 소스로 되어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SecureDrop을 설계 및 개발했으며 그 프로그램은 현재 NewYorker 및 Washington Post를 포함한 12개 이상의 언론기관에서 사용되고 있다.[21]

아래에는 그가 작성한 글을 모아놓은 사이트다.

재미있지않은가. 필자는 처음 그에 대해서 검색했을 때 순간 잘못 검색한 줄 알았다. 크래커였던 그는 이제 컴퓨터를 잠시 내려놓고 글을 작성하고 있다. 그의 글에는 자신의 경험과 기술이 밑바탕이 되어 하나의 정보를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 글을 쓴다. 아무리 기술적인 글, 생각이 담겨 있는 칼럼이 되더라도 글에는 자신의 색깔이 보인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멋있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리로 낼 줄 안다는 것이다. 그의 글과 그가 하는 프로젝트에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실제로 그의 글 한 두어 개를 보다 보면 상당히 매력 있는 글들이 많다. 이런 그가 누군가의 연구한 기술을 다른 이에게 더 잘 표현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의 그의 글이 기대된다.

유성경 yuopboy@grayh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