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들 사이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는 크래커가 있다. 일반적으로 크래커가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굉장히 드문 경우인데 이 어려운 것을 해냈다. 국방부는 물론 국가 안보국의 전산망을 해킹하여 교묘하게 추적을 피하고 모토로라, 마이크로시스템즈 등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여러 기업체를 해킹했다. 그는 순수하게 그의 실력을 감탄하게 만들었고 그만의 팬층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크래커의 미화는 거의 그가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그의 이름은 케빈 미트닉이다.
콘도르라고도 잘 알려진 케빈 미트닉은 미국 국방성 펜타곤, 국가안보국의 전산망과 모토로라, 마이크로시스템즈 등 여러 기업체를 여러차례 해킹했다. 그는 해킹 범죄를 저지른 해커지만 그의 영향은 대단하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크래커에 대한 미학은 그가 만들어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의 기업을 해킹한 해커를 스카우트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의 네트워크망을 해킹하여 교묘하게 추적을 피하는 이야기는 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거의 크래커에 대한 잘못된 동경심은 케빈 미트닉이 만들어냈다. 그는 본래 크래커였지만 현재는 어엿한 한 기업의 CEO로 활동하고 있다.
케빈 미트닉(Kevin Mitnick)은 1963년 8월 6일 미국에서 태어나 현재는 CEO 겸 보안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해커다. 어렸을 적부터 컴퓨터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케빈 미트닉은 고등학생 시절 여러 차례 학교 전산망을 뚫어 성적을 조작하기도 했다. 이후, 다른 기업체에서 소프트웨어를 훔쳐내거나 DEC의 일급 기밀 정보에 손을 대는 등 이러한 전산 관련 범죄로 여러차례 체포되었고 그 중 한번은 1년 정도 징역으로 살다오기도 했다. 그는 재판하는 와중에도 담당 판사의 기록을 바꾸거나 법정 전산 시스템에서 자신에 대한 범죄기록을 지우기도 했다. 그는 크래커였지만 그의 실력이 하도 대단해서 많은 팬층이 생긴다. 당시 그가 컴퓨터를 만질 수 없는 처벌을 받았을 때는 많은 해커가 이러한 처벌을 돌리기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항의성 시위를 하곤 했다. 더불어 케빈 미트닉의 일화는 ‘테이크다운’이라는 영화로도 나오기도 하였고 해킹범죄에서 손을 털고 난 후, 여러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가 처음으로 해킹한 것은 13살 때였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학교에 다니던 그는 일정 금액을 내면 버스를 탈 수 있는 펀치 카드 시스템을 해킹했다. 그는 몰래 버스 차고지로 숨어 들어가 폐기되는 펀칭 카드를 보고 펀치로 뚫는 패턴에 따라 표현하는 정보가 다름을 알게된다. 이를 통해 그는 다른 이가 사용했던 펀칭 카드를 보고 그들의 개인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1979년, 16살 때는 처음으로 승인되지 않은 권한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는 전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고쳤고 미국의 컴퓨터 메이커 중 하나인 DEC사의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를 복사해갔다. 이 사건은 거의 10년 뒤인 1988년에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올라와 12개월의 선고를 받는다.
1992년 그는 여러 기업을 해킹한 혐의로 FBI의 추적을 받다가 1995년 2월 15일 그의 집에서 체포되었다. 당시 기사를 보면 그때까지 그는 35개의 회사를 해킹했으며 이를 복구하기 위해 3억 원의 비용이 든다고 전했다. FBI가 그를 체포하는 데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는 FBI의 전산망을 해킹하여 자신의 정보를 염탐하였고 이를 이용하여 2년 동안 FBI의 추적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그가 체포된 것도 일본인 해커 시모무라에 의해서 체포되었다. 케빈 미트닉은 네트워크와 컴퓨터구분 없이 제집 마냥 아주 쉽게 해킹하였고 이 때문에 케빈 미트닉은 해킹으로 거의 신격화 취급되고 FBI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모무라 같은 협조자는 무척이나 환영이었다. 케빈 미트닉은 다른 사람의 휴대폰 번호를 통해 IP를 속여 인터넷에 접속하였고 이를 이용하여 추적을 피하고 다른 시스템을 해킹했다. 그러다 케빈 미트닉이 시모무라의 컴퓨터를 해킹하게 되고 열 받은 시모무라는 끝까지 그를 추적하여 정보를 FBI에 넘긴다. 체포되었을 당시 케빈 미트닉은 시모무라에게 “당신의 실력은 정말 놀랍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일벌백계 차원에서 그의 범죄가 과도하게 평가된 것도 있다. 손해액이 3억에 이른다든지 미국의 항공 핵 방위 시스템인 북미 항공 우주 방위 사령부(NORAD)과 같이 보안이 철저한 몇 개의 시스템에 침투했다는 등과 같은 루머에 휩싸이기도 했다. 사실 그는 펜타곤과 국가안보국(NSA, National Security Agency)의 전산망도 침투하지 않았으며 미국의 항공 핵 방위 시스템인 북미 항공 우주 방위 사령부(NORAD)도 침투하지 않았다 말했다. 100만 달러 이상의 금전적인 목적으로 해킹했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이 또한 자신은 금전적으로나 악의적인 목적으로 절대 해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체포되고 2003년 1월 21일까지 약 3년간 컴퓨터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받았다. 또한, 5년간의 보호 관찰 명령을 받았고 석방 후 자신의 이야기로 7년간 돈을 버는 것도 금지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당시의 최고의 해킹 기술을 소유하고 있는 해커로 주목을 받을 대로 받은 상태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그에게 밥줄을 뺏는 컴퓨터 금지 형벌을 기각하라는 해커 팬들도 세계 각지에서 움직임도 상당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보호 감찰관 전화가 갑자기 불통이 되거나 전화국 데이터가 사라지거나 그의 범죄기록이 삭제되는 듯 이상한 일도 일어나곤 했다. 물론 그것을 케빈 미트닉이 했는지 그를 지지하는 해커가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가 컴퓨터 금지가 풀리는 날에는 그의 웹사이트에 ‘자유를 찾은 것을 축하합니다’라는 한 해커의 축하 메시지도 올라왔다. 더불어 그의 기업 웹 사이트에도 ‘그를 존경하며’ 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