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lware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2016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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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바이러스는 1991년 2월 4일, 호주에서 처음 발견되어 도스 시절 굉장한 악명을 떨쳤다. 덕분에 백신 프로그램이 급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도 하다. 바이러스는 평소 휴먼 상태로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지만 3월 6일이 되면 슬그머니 나타나 사용자의 컴퓨터를 파괴했다. 컴퓨터를 파괴한다는 이 바이러스의 공포감은 당시 상당하여 3월 5일 전날만 되면 금융권은 물론 IT 업계 등 여러 기업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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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바이러스(Michelangelo Virus)는 1992년 3월 6일에 처음 발생한 바이러스로 한동안 매년 3월 6일이 되기 전날은 많은 언론사가 경고의 기사를 쓰곤 했었다. 당시 안티바이러스 전문가 존 맥아피(John McAfee)는 이 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 500만 대의 PC가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첫 발생은 3월 6일이지만 실제로 발견된 것은 1991년 2월 4일 호주의 안티바이러스 전문가인 로저 리오단(Roger Riordan)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그는 당시 컴퓨터 안에 있는 이 바이러스가 딱히 신경 쓸만한 바이러스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바이러스는 그저 메모리 2KB를 줄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는 Stoned 부트 섹터 바이러스의 변종으로 당시에 다른 바이러스보다 큰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 그는 바이러스를 PC에 남겨두었고 이 때문에 미켈란젤로 바이러스의 활동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컴퓨터는 하드디스크가 아닌 플로피 디스크로 부팅을 시도했지만 시스템은 로드가 안 되고 그저 "Non system disk or disk error" 시스템이 없거나 디스크 에러라는 메시지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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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바이러스는 3월 6일이 되면 감염된 하드 디스크 모든 섹터에서 처음 100섹터를 NULL값으로 덮어 쓴다. 그러면 컴퓨터 안에 있는 내용은 남아있겠지만 컴퓨터 부트에 필요한 데이터는 사라지고 시스템을 불러올 수 없다. 즉, 바이러스는 하드 디스크 부트에 필요한 데이터가 있는 맨 처음 섹터에 다른 값으로 채워 넣어 데이터를 읽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컴퓨터가 부트할 시 불러올 데이터가 없어 결국 부팅을 할 수 없게 된다.

미켈란젤로 바이러스의 감염은 플로피 디스크를 통해 퍼져나갔다. 감염된 플로피 디스크를 컴퓨터에 꼿으며 플로피 디스크 안에 있던 부트 섹터 바이러스가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 MBR에 자신을 복사하여 저장했다. 네트워크를 통한 확산이 아니고 플로피 디스크를 통해 확산되어서 큰 피해는 나오지 않았으며 실제로 바이러스의 발생은 일부 지역에서만 발생되었다고 한다. 더불어 이 바이러스는 3월 6일 하루만 퍼져 나가 실질적으로 많이 감염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플로피 디스크로 감염되는 미켈란젤로 바이러스지만 플로피 디스크의 사용 빈도수가 줄어 더는 보기 힘든 바이러스가 되었다. 거의 1980년과 1990년 초반에만 풍미했던 가장 흔했던 유형의 악성코드였다. 네트워크에는 연결되지 않았었지만, 당시 데이터를 지운다는 특징과 백업이 힘들었을 그 당시를 생각했을 때 이 바이러스는 주목할 만했다. 물론 이런 특징을 넘어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은 바이러스의 명칭이었다.

당시 이 바이러스를 발견한 리오단은 그의 친구와 바이러스에 관해 이야기 하다가 바이러스에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친구 생일은 3월 6일이었고 1475년 3월 6일에 태어난 르네상스의 작가, 미켈란젤로도 그때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꼭 이 바이러스의 명칭이 미켈란젤로일 필요성은 없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를 작성한 이는 다른 어느 날을 선택했어도 되었지만, 그는 3월 6일을 선택하였고 그런 이유와 의도로 결국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라고 거의 확정 지었다. 물론 3월 6일에 태어난 다른 이의 명칭을 붙여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딱딱한 이야기에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좋은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바이러스에 인물이나 의미 있는 명칭을 가져다 붙이면 이미지로도 표현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간혹 어떤 경우에는 바이러스에 발견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딱 봐도 유성경짱짱 바이러스보다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더 의미 있어 보이고 바이러스의 특징도 눈에 탁 들어오는 명칭이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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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의 단기간 발전을 이루게 한 것도 미켈란젤로 바이러스의 영향이 크다.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때문에 컴퓨터가 파괴된다는 무시무시한 소문과 반대로 피해는 크지 않았다. 당시 이 바이러스의 공포감 때문에 많은 백신 프로그램이 컴퓨터에 설치되어 피해는 덜하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아마도 공포감이라는 것이 더 좋게 작용하지 않았나란 생각도 든다. 물론 반대로 백신 업체 이미지를 보면 타격을 입었을 수도 있다. 생각보다 못한 피해는 오히려 이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알린 이들에게 화살이 돌아갔고 이 모든 것이 백신 업체에서 백신 프로그램을 팔기 위해 두려움을 악용했다는 것이다. 즉, 백신 회사들은 더 많은 백신을 팔려고 일부러 악성코드의 위험을 과대 선전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 바이러스를 적절하게 잘 이용한 사람도 있다. ‘존 맥아피(John McAfee)’ 그는 이 바이러스가 나올 당시 전 세계 컴퓨터 500만대가 사라질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당시 John McAfee는 1992년 10월 그가 만든 안티바이러스 회사 설립하여 초기 주식 4,200만 달러를 올렸다. 그때 회사의 직원은 2~3명에 불과했고 회사를 설립하고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를 만든 이는 여전히 지금도 누군지 모른다. 그가 무엇 때문에 만들었고 단지 재미를 위해 만들었는지조차도 모른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에게 컴퓨터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알리는데 좋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백신기술이 발전하는데 이 바이러스가 발판이 되어준 셈이다. 사람들은 미켈란젤로 바이러스의 피해를 과장하면서 백신 업체의 배를 불린 바이러스라고도 하지만 여러 의미로 바이러스 역사의 한 획을 그어준 의미있는 바이러스라고 생각한다.

유성경 yuopboy@grayh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