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Best of the best, 유성재 연구원님이 말하는 BOB ①
2017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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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서류 모집이 어느덧 발에 불이 떨어져 내일 밤 자정에 모집을 마감 한다. 예비 Best of the Best(이하 BOB) 6기 분들이여 서류 작성은 다 하였는가.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BOB 모집에 앞서 거의 막바지, 아니 사실 오늘 마감이지만 BOB에 관하여 그 관계자와 인터뷰 한 것을 풀어보려 한다. BOB의 탄생 비화와 그가 말하는 BOB, 거기서 피어나는 우정, 사랑 그리고 배신. 사실 배신은 그냥 앞에 우정, 사랑 다음에 나와야 할 것 같아서 끼워 맞춰 본 거지 실제로 배신은 없다. 아무튼, 서로를 밟고 밟아 올라가는 진흙탕 같은 더티한 싸움을 곧 하게 될 BOB 6기에게 이 글을 바친다. 참고로 난 3기생으로 이미 수료했다. 행운을 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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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단 본인 소개부터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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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BOB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정보기술연구원(이하 KITRI)에서 주임연구원으로, 2012년 7월 BOB 1기가 만들어질 때부터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BoB 교육의 기획 시절부터 참여해왔던 셈이니까, BoB 관계자 중 멘토들과 교육생들의 활동을 가장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웃음) 궁금한 것에 대한 답변을 잘 드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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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에피소드가 많으실 것 같다. 아주 기대가 크다. BOB를 만든 동기나 과정을 말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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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의 처음 시작은 내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이었던 것으로 안다. 듣기로는 7.7 DDoS 대란 이후 진행된 관계부처 회의에서,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정보보안 고급인재 양성이었다고 한다. 취지는 좋았지만, 국회에서 관련 예산을 마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이 때 요즘 핫(?)하신 우리 유준상 원장님께서 “내가 한 번 만들어보겠소”라고 하신 후에 국회에서 예산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마 BoB에 들어온 수료생들은 원장님의 당시 활약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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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BoB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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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시작한 BoB에 내가 참여한 계기는 은사이신 숭실대학교의 정수환 교수님 추천 덕분이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정보보안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있으며,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이 가능한 인재를 찾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 회사가 원한 사람은 5년 경력의 인재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사람이 흔하진 않았나 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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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추천말고 다른 이유는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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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이유라면 이 회사가 서울에 있었다는 것 정도?(웃음). 난 서울에 살고 싶었고, 회사에 다니더라도 해가 떠있는 동안에 집에 가는 일을 언제나 꿈꿔왔다. 대학원 생활에서 그런건 상상하기 어려웠으니까 당시에는 광합성이 매우 그리웠다. 그렇게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거의 4년간 해가 떠있는 동안 집에 가본 기억이 별로 없었으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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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시 가려고 했던 다른 회사가 어딘지 물어봐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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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문제는 없을 듯..? ETRI였다. 당시 많은 회사들에서 정보보안을 전공한 석사 졸업자를 원했던 기억이 난다. 면접관들이 좋게 봐주신 덕분에 몇 군데 합격을 할 수 있었고, 합격한 회사들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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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런데 왜 KITRI에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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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에 가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보다 KITRI에 가서 BoB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보람있는 일일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던 것 같다. ETRI가 나쁜 회사라는 말이 아니라 내 개인 취향이 그랬다. 눈에 보이고 내가 실제 느낄 수 있는 보람을 원했다. 삼성 같은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2,000만원 정도의 연봉이 적었다고 가정한다면, 아마 나는 2,000만원 정도를 보람(어쩌면 행복?)같은 것으로 환원받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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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지금은 만족스러운가. 2천만원짜리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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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김성근 감독이 주연으로 나온 ‘파울볼’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었다. 김성근 감독의 고양 원더스 팀 시절을 다큐 형식으로 담은 것이었다. (음.. 교육업에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기도 하다.) 당시 고양 원더스 선수들은 프로 야구 2군 무대도 밟지 못하는, 어쩌면 인생에서 한번도 야구를 죽자고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알고 있는 얘기겠지만, 김성근 감독은 그런 선수들을 데리고 굉장한 성과를 얻어냈고, 몇몇 선수들은 실제로 프로 야구 선수가 되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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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화 홍보하러 오셨나? 그래서. 왜 영화 얘기를 해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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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미안하다. 말이 길어졌다. 여기부터가 중요한 대목인데, 이 팀은 결국 망한다. 팀의 재정적 사정이 좋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때 제작진이 김성근 감독에게 왜 안떠나시냐고 물어보게 되는데, 감독이 감동적인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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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말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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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에서 첫번째로 배출된 선수들이, 고맙다는 의미로 야구공에 싸인을 해서 선물로 주었다. 자기들이 유명해진 다음에 이 공이 매우 비싸질 테니까, 감독님 잘 보관해두시라고. 그 때 사인을 해주었던 친구들 중 3명 정도가 아직 프로에 진출하지 못했다. 나는 책상 옆에 놓은 이 야구공을 볼 때마다 이 젊은 친구들에게 책임감을 느낀다. 이 친구들을 꼭 잘되게 해줘야하는데.. 그렇게 남은 선수들을 챙겨주다 보니까 결국 팀을 나갈 수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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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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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교육업에 봉사하시는 분들은 매우 비슷한 감정을 한번 쯤은 느껴보실 것 같은데,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키팅 선생님도 같은 고민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프로야구팀들의 숱한 러브콜에도 자기가 책임을 맡은 팀의 선수들이 눈에 밟혀서 그만두지 못했다는 김성근 감독의 이야기다. 그 분처럼 나도 실수를 하나 했는데, 책상에 애들이 건내준 편지나 선물을 올려두었다는 것이다. 지난 5년의 경험과 기억은 다른 것으로 보상받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 기억을 그대로 지닌 상태로 다시 5년 전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누군가 다시 BoB를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백번 물어도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만큼 후회는 당연히 없고, 보람만 떠오른다. 대신 삶은 피폐해졌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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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BOB 하면서 연구원님의 역할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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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기를 시작할 때 역할을 나누었었는데, 그 때는 고정된 역할이란게 있을 수가 없었다. BOB가 처음 만들어지고 맨땅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뭘 해야 하는지 몰랐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진 않았다. (웃음)

다소 겹쳐지긴 했지만, BoB의 내부 살림과 예산의 쓰임, 행정의 토대를 만드는 건 당시 김부민 씨가 해주었고, 교육을 기획하고 멘토단과 학생들과 교감하는 것은 내 역할, 우리가 하는 일을 체계화하고 높은 분들과의 교점을 만드는 것이 당시 과장님의 역할이었다. 크게 보면 그때 만들어놓은 이러한 형태가 여전히 그대로 유지되는 것 같다. 내 역할은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의 말을 듣고, 교육생들과 멘토단과 이야기하고, 이를 토대로 기획을 짜고 운영에 반영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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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BoB 업무 중, 그 외에 특별한 것도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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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좀 더 진실(?)에 가깝게 말해본다면,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아무도 만들어 본 적없는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다 밝힐 순 없지만, BoB 1기가 만들어졌던 그 5~6월 기간은, 정말 피가 말라가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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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 기간에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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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냥 그 시기에는 항상 바빴다. 특별히 에피소드라 함은, 피곤함에 쩔어있다가 몸에 병나서 수술도 해보거나 휴가는 상상도 못했었고.. 이런거? (웃음) 하지만 즐거웠다.

음 BoB를 만들던 시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BoB 센터가 처음 만들어진 날이다. 그 날도 역시 난 혼자 센터에 남아있었는데, 내 기억으론 밤 11시였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찍은 사진이 너무 감격적이었던 나머지.. 아직도 그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이후에도 회사에서 밤을 지새우는걸 밥먹듯 했다. 그날 내 기억에는 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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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보람찼었나보다. 날씨까지 기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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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1기 지원 마감날 22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지원한 걸 확인하고, 밤샌 상황에서 퇴근하는데 그 날도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왔었다. 코드게이트에서 발표를 준비하던 날에도 그랬고, BoB 1기 발대식 때도 그랬다. 매우 걸리적거리는 일이었지만.. (웃음) 원장님께서는 무엇인가 시작할 때 비가 오면 잘될 징조라고 말씀하셨다. 함께 고생했던 김부민 씨(요즘은 누나라고 부르지만)는 비를 홀딱 맞고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간 순간에도 모두 잘되면, 이것 모두 추억이 될 것이라고 얘기해줬던 기억이 난다. (웃음) 확실히 모두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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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BoB 1기를 만들었을 당시에 다른 에피소드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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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단 섭외 당시의 당시에 일화들도 떠오른다. 나한테 하달된 미션은 “30명을 구해오라”라는 것이었는데, 그 짧은 기간 내에 30여명의 전문가를 불러 모은다는게 지금 생각해봐도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미션의 난이도에 비해서 내 전략은 단순하기도 했다. 그저 정보보안 전문가들에게 가서 "애들을 잘가르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하거나, "행정이나 윗분들은 저희가 어떻게든 설득할테니, 오셔서 교육은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말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말로 섭외가 되다니... 대단한 것 같다.(웃음) 그만큼 우리나라 정보보안 전문가 분들 중에 좋은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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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페이가 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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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때 비용 얘기는 거의 하지 못했었는데, 1기때는 회사 문제로 돈도 안받고 교육에만 참여해주시는 멘토님들도 상당 수 있었던 탓이었다. 당시 모신 분들이 대부분 교육에 참여하지 않고 회사 일을 하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분들이셨으니까..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감사한 생각이 든다. 멘토님들 중에는 센터에서 거의 거주하다시피 하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이렇게 오랜간 교육을 해주실 줄 몰라서.. 돈을 그렇게 마련할 수도 없었다.(웃음) 이 분들이 없었으면 BoB가 이렇게 흥하게(?) 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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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학생들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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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를 지금처럼 24시간 개방하지 못했던 시기에는, 매일 학생들이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 하라고, 밤 시간에도 그냥 혼자 그 자리에서 일했던 기억들이 난다. 그러던 와중에 추석 연휴였는데,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이제 막 쉬려고 할 때, 권혁이라는 고등학생에게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공부를 하고 싶다고 센터 열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 (웃음) 생각하다가 그냥 센터로 와서 문을 열어줬다. 처음은 이 친구 때문이었지만, 이후 몇 년간은 공부하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언제든 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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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 권혁 학생 외에도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많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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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생처럼 이후에는 BoB 센터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학생들이 기수마다 꼭 있었는데, 기억 속에서 이런 친구들은 꼭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냈던 것 같다. 죽돌이라 불리우는 이 친구들은 역량이 하루가 다르게 향상된다. 그 중에는 집안이 어렵거나, 금전적인 문제가 있어서 공부가 어려운 학생들도 있었고.. 힘든 여건 속에서 공부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옆에서 이런 문제들은 해결해주고 싶었다. 가끔은 사비로 보태주기도 하고, 그들의 얘기를 계속 귀담아 들으려고 노력해보기도 했다. 이렇게 5년 간 지켜본 결과, 확실히 공부와 운동은 시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이런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BoB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 중 하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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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BoB에 상당히 애정이 있으신 것 같은데, BoB만의 특별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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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5년 간의 BoB를 하나의 단어로 특징지어 말하라고 한다면, 그들만의 "문화"라고 대답할 것 같다. 애초에 BoB를 만들 때부터 기획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다. 서로 다른 배경과 다른 소속, 지역, 기술을 가진 친구들이 공부하고 친해지고 서로 영향받는 문화.. 이렇게 서로 영향을 받고 정보보안 전문가가 되고자 컴퓨터와 씨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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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맞다 센터에 가면 정말 많은 학생들이 죽치고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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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센터도 이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한다. 센터에서 멘토나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샤워실과 수면실도 꼭 만들고 싶었는데.. 이 점은 아직도 아쉬운 생각이 든다. 사실.. 처음에는 정보 보안과 관련된 사람은 누구라도 언제든 드러누울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했다. 정보보안 문화의 메카같은 곳(?)을 만드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던 걸로 생각하면 된다. 물론 샤워실을 만들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이유로, 지극히 파격적인 일은 실행하기 어렵기도 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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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덕분에 수료한 이후에도 BoB 센터에 가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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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당연하다 여겨지는 것들이지만, 이런 문화를 이해하기 힘든 분들에게는 다소 “황당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BoB 멘토님들이나 학생들에게 센터를 "항상 재밌는 일이 있을 것 같은 곳"으로 느껴지게 하는 작업은 지금의 BoB에게도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지금도 강남 BoB 센터에는 별일없이도 죽치고 공부하며 앉아있는 학생들과, 멘토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면만 보아도 BoB가 일반 교육 기관들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BoB의 “조금 다른” 문화는 BoB를 보안 분야에 대한 열정과 좋은 기억을 공유하는 강력한 네트워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었다. 학교가 아니면서도 멘토들과 학생들은 BoB라는 이름 자체를 매우 좋아하게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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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맞다 우리가 충성?스럽긴 하지" 라고 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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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BoB의 핵심은 "이것"인데, BoB 교육 자체를 좋아하고 있는 참여자들 그리고 이들의 관계나 혹은 문화… 무엇인가 잘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를 향해서 꿈을 꾸는 학생들이지만, 연구 대상을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자 하는 열정은 현실감이 넘친다. 이들이 수료한 이후에도 함께 도움을 주고 열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BoB의 특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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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구원님도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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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이야기, 그리고 멘토단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어야했기 때문에 BoB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BoB가 굉장히 빠른 시일 내에 학생들의 문화에 영향을 끼치게 된 데에는 우리의 이러한 자세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형,동생처럼 지내는 멘토들과 오피스는 BoB에 소속된 교육생들 뿐만 아니라, BoB에 소속되지 않은 외부 해커들에게 쉽게 다가가는데 도움이 되는 문화와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멘토님들도 마찬가지만 나도 여전히 수료생들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이 문화가 BoB가 가장 강력한 네트워크로 자리잡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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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BoB에 나쁜 기억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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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많이 있다. 특히나, 불가항력이라 할만한 문제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어서, 힘들 때가 많다. 5년 간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다만, 많은 분들이 그때마다 많이 도움을 주신다. 얼마전에 BoB 자문위원회도 열렸었고, 지난 주에는 멘토단 회의도 진행했다. 이들은 언제나 믿음직하게 조언을 주시곤 한다. 그런 일이 있어선 안되겠지만, 내가 게으른 그 어떤 날(웃음)에도 이 분들은 언제나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교육에 임해주시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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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뱃사공이 많다는 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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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많은 분들의 좋은 의견에, 가끔은 너무 많은 뱃사공들이 한 배에 탄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 적도 있긴 하다. (웃음) 하지만, 이 분들과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자리들은 언제나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교육에 대한 복잡한 이슈가 많은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무엇인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잘못되었다고 말해주어야 하고, 그러한 의견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시스템이 잘 돌아간다. 이렇게 말하고나니 BoB 교육은 정말 쉬운 것이 아닌 것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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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이제 교육에 대해 묻고 싶다. BoB 교육에 대해 설명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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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교육에 대한 설명은 온라인에도 많이 있다. 이경문 멘토님이나 정구홍 멘토님, 심준보 멘토님께서 BoB에 대한 좋은 글을 적어주셨다.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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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참고할 수 있도록 친절히 링크를 걸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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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학에 정보보호학과가 생긴 것도 다른 학과들에 비해 얼마되지 않은데다가, 그 수도 적어서 정보보안 교육을 어디서 받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학생들의 수준도 천차만별인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학생들을 선발할 때도, BoB는 학생들이 못하는 것보다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하지만 그렇게 뽑힌 학생들이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발돋움하기에 8개월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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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래서 사후관리가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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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는 이를 위해 수료 후에도 연구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여러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를 사후관리라 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하나의 체계 하에서 학생들이 동일한 수준으로 주입하기에는 시간적/물리적인 한계가 매우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BoB는 이 기간동안 보통 두 가지에 초점을 둔다.

하나는 물을 떠먹는 방법.. 다른 하나는 물을 먹어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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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세히 말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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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는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연구 주제를 찾아내며 논리적인 접근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에 역량을 다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이 짧은 기간동안 자신도 느낄 수 있을만한 눈에 보이는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기술적 성취가 천차만별인 학생들에게 하나의 주제로 앵무새처럼 떠드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왔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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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쉽게 말해줄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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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이야기해본다면, 제로데이 경험이 없었던 학생은 8개월 후에 1개 이상의 제로데이를 찾을 수 있는 능력자로.. 1개 이상의 제로 데이를 찾을 수 있었던 학생은 여러 개를 기계처럼 찾아낼 수 있는 괴물로.. 여러 개의 제로 데이를 제보할 수 있는 학생은 파급력과 기술력이 필요한 취약점을 찾을 수 있는 갓으로.. 발전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환경에서 높은 실력에 있었던 학생들이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 많아서인지, BoB는 자신의 실력을 “제곱”으로 만들어준다는 농담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웃음) 이 농담은 실력이 0이거나 1인 학생들은.. 피나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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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많이 듣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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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BoB 교육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멘토들과 교류하면서 성장의 방향성을 확인해보게 된다. 모든 교육이 그렇겠지만.. BoB는 특히나 자율적인 환경 속에서, 얼마나 자신의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느냐에 경험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BoB에 지원코자 하는 학생들은 이를 반드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 Best of the best, 유성재 연구원님이 말하는 BOB ①

Best of the best, 유성재 연구원님이 말하는 BOB ②

Best of the best, 유성재 연구원님 댓글 이벤트 ③

유성경 yuopboy@grayhash.com